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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이야기

커피를 사랑한 황제 고종과 커피 독살 사건

by 연쇄먹방범 2020.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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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사실상 마지막 왕 고종은 아버지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양 갈래에서 끊임없이 부유하는 인물이었다. 아버지와 명성황후의 메울수 없는 간극처럼 외세와 조선 내부의 기운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결국 나라를 잃은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모습은 고종의 생활에서도 고스란히 전해지는데, 신문물을 받아들인 개혁 군주의 모습부터 정세를 읽지 못하고 사치를 즐겼던 모습까지, 극명하게 엇갈리는 모습을 통해 당시 혼란스러운 정국을 짐작게 한다.

 

 

이중 신문물과 고종하면 심심찮게 떠오르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커피'다. 고종은 커피 애호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커피를 즐겨 마셨는데, 기록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초로 커피를 마신 사람이 바로 26대 임금인 고종이라 전해진다. 당시 커피는 서양에서 들어온 탕이라는 뜻으로 '양탕(洋湯)'또는 커피의 발음을 음차 해 ‘가배’, ‘가비’라고 불렀다.

 

ⓒ 영화 '가비' / tvN '미스터 션샤인'

 

고종은 1896년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사관에서 일하던 독일 국적의 프랑스인 '손탁(Sontag)'의 소개로 커피를 처음 접하게 됐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손탁보다 이전 커피와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어 손탁의 소개로 커피를 접하게 되었다는 기록은 사실과 좀 다르다고 할 수도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역사적 추측일 뿐이다.

 

 

1884년부터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한 알렌(Allen)의 저서를 살펴보면 '궁중에서 시종들로부터 홍차와 커피를 대접받았다'고 기록돼 있다. 같은 해인 1884년 미국의 천문학자 로웰(Lowell)은 그의 저서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조선 고위 관료로부터 커피를 대접받았다는 기록을 남겼다. 선교사 아펜젤러(Appenzeller)의 보고서에도 커피가 등장하는데, 1888년 인천에 위치한 '대불 호텔'을 통해 이미 커피가 일반인들에게 판매됐다고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유길준의 '서유견문(1895)'에는 커피가 중국을 통해 조선에 소개됐다고 적혀있다. 이를 미루어 짐작해보면 고종이 커피를 접한 것은 아관파천 이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왜 고종에게 커피를 전해준 인물이 손탁이라고 추측하는 것일까? 이는 고종과 손탁의 만남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896년 3월 11일 러시아 공사관으로 고종이 숨어들었다. 아관파천이다. 당시 고종은 자신과 세자의 안전이 위협받았기에 러시아 공사관에 기거하는 동안 모든 음식물을 외부에서 조달 받았다. 이를 미스 ‘손탁’이 제공했던 것이다.

 

 

그래서 손탁은 고종의 신임을 받을 수 있었는데, 고종은 덕수궁 건너편 정동 400여 평 대지에 회색 벽돌로 2층 양옥집을 지어 손탁에게 선물했다. 손탁은 1897년부터 이 집을 호텔로 운영했는데 이곳이 구한말 외국인들의 사교장이었던 손탁호텔이다. 이 호텔 1층에는 레스토랑 겸 커피숍도 있었다. 이러한 정황으로 고종이 아관파천 때 미스 손탁에 의해 처음으로 커피를 접하게 되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된 것이다.

 

 

어쨌든 고종은 커피를 즐겨 마셨는데 아관파천 후 다시 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꾸준히 커피를 즐겼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덕수궁에 정관헌(靜觀軒)이라는, 사방이 트인 서양식 정자를 짓고 여기서 커피를 마시며 외국 공사들과 연회를 갖기도 했다. 또 궁중 다례 의식에서도 커피를 사용했을 만큼 그 애정이 남달랐다고 전해진다.

 

 

게다가 고종은 자신이 아끼던 은제 커피잔을 명성황후의 주치의 이자 정신여고 설립자인 벙커 부부에게 하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이 사랑하는 이 검은 음료인 커피로 인해 죽음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바로 커피 독차 사건이다.

 

 

고종은 일제에 의해 이태왕이란 이름으로 권좌에서 물러난 뒤 1890년대 200명에 달하던 궁녀가 20명으로 줄어드는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 보냈다.

 

 

이 와중에 고종이 마시는 커피에 아편을 타서 독살하려던 시도가 있었다. 궁중의 요리를 담당한 숙수들이 돈에 혹해 고종이 마시는 커피에 치사량의 아편을 넣어 고종을 독살하려 한 것이다.

 

 

커피 독살 미수 사건의 진상은 이렇다. 천민 출신으로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통역관 역할을 하며 신임을 얻었던 김홍륙이 거액의 착복 사건으로 유배형에 처해졌다. 유배를 떠나는 길에 김홍륙은 1898년 고종의 생일인 9월 12일 관리 공홍식과 요리사 김종화를 매수해 고종과 순종(태자)이 마시는 커피에 아편을 넣어 독살하고자 한 것이다.

 

 

평소 커피를 즐겨 마시던 고종은 커피 냄새가 이상하다고 느껴 커피를 마시지 않았고 태자(순종)는 커피를 마시다 토하고 쓰러졌다. 순종은 중독 후유증으로 치아를 18개나 일었는데 이에 상궁 김명길은 “고종은 커피 맛이 이상한 것을 알고 바로 뱉었지만 복용량이 많았던 태자의 경우 며칠 동안 혈변을 보았고 치아가 빠져 의치를 18개 해 넣었다”며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이 사건으로 김홍륙, 공홍식, 김종화는 사형을 당하고 김홍륙의 처 김소사는 곤장 100대와 3년간의 백령도 유배형을 받았다.

 

 

이 사건 이후 고종은 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고종은 그 누구도 믿지 못하고 불안에 휩싸이게 됐는데, 고종은 당시 식사를 안전하게 하기 위해 철가방에 자물쇠까지 채운 뒤, 자신의 눈앞에서 자물쇠를 개봉하고 식사를 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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