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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이야기

대한민국 최초의 커피 (ft.커피빵)

by 연쇄먹방범 2020.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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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커피가 처음 들어온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1830년대 선교활동으로 국내에 많은 인원이 들어온 프랑스인 신부들이 마셨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지만 커피에 대한 기록은 없다.

 

 

다만 고종이 커피를 즐겨 마셨고 앙투아네트 손탁(Antoinette Sonta)이 카페를 운영하면서 커피를 판매했다는 점 등을 기반으로 그 언저리로 추측할 수 있으나 그보다 이전 커피가 들어왔다는 것을 기록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해서 고종이 처음 커피를 마셨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커피는 19세기 후반 임오군란이 일어난 1882년 이후부터 1890년 사이에 들어왔다고 보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커피 전래 시기를 19세기 후반으로 보는 것은 이때 청나라를 통해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외국인들의 왕래가 늘었고, 특히 임오군란 이후 미국이나 영국 등 서양 외교사절이 들어오면서 자연스레 커피를 마시는 풍습이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1884년부터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한 알렌(Allen)의 저서를 살펴보면 '궁중에서 시종들로부터 홍차와 커피를 대접받았다'고 기록돼 있다.

 

 

같은 해인 1884년 미국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 퍼시벌 로런스 로웰(Percival Lawrence Lowell)은 그의 저서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 Choső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1885)』에 조선 고위 관료로부터 커피를 대접받았다는 기록을 남겼다. 책에서 그는 “1884년 1월 추운 어느 날 조선 고위 관리의 초대를 받아 한강변 별장으로 유람을 가게 되었는데 꽁꽁 얼어붙은 겨울 한강의 정취를 즐기던 중 우리는 다시 누대 위로 올라 당시 조선의 최신 유행품인 커피를 마셨다”라고 기록했다.

 

 

영국 영사를 지냈으며 한국에서 지낸 생활을 바탕으로 『조선풍물지』를 저술한 윌리엄 칼스(Carles, William R)를 통해서도 커피를 확인할 수 있다. 1885년 11월에 조선에 들어와 당시 조선 세관의 책임자인 묄렌도르프(P. Möellendorff)의 집에 머물며 “우리는 이제 좋은 곳에서 씻을 수 있고 커피를 마시게 되는 사치스러움에 감사하게 되었다”라는 글을 책 ‘한국에서의 삶(Life in Corea)'에 글로 남겨두었다.

 

 

선교사 아펜젤러(Appenzeller)의 보고서에도 커피가 등장하는데, 1888년 인천에 위치한 '대불 호텔'을 통해 커피가 이미 일반인들에게 판매됐음을 파악할 수 있다.

 

 

칼스와 같은 해에 조선에 들어와 1889년 관북 지방으로 신혼여행길에 오른 언더우드 부인(Mrs. Underwood)은 그녀의 저서 「Fifteen Years among the Top Knots(1904)」에 조선에서의 커피 음용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녀는 저서에 “현감과 지역민들에게 대접한 저녁에서…. 색다른 커피를 소개했다. 우리는 설탕이 떨어졌다고 속삭이지 않고 커피에 벌꿀로 향기를 돋우었던 것이다”라고 전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커피를 처음 기록한 이가 있었으니 유길준이다. ​유길준(1856~1914)은 개화를 꿈꾸던 구한말 선각자로 그가 남긴 '서유견문(1895)'에는 커피의 기록이 남아 있다.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기도 했던 유길준은 미국 유학 중 유럽을 순방하며 본 선진문물을 1895년 발간된 ‘서유견문’에서 소개했다. 이 책에서 유길준은 “1890년경 커피와 홍차가 중국을 통해 조선에 소개됐다. 서양 사람들은 주스와 커피를 조선 사람들이 숭늉과 냉수 마시듯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커피는 그 그윽한 향과 머리를 맑게 하는 카페인으로 왕족과 대신들을 매혹시키며 기호품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커피공화국이라 불리는 지금의 모습과 사뭇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커피와 관련된 다른 음식은 또 없을까? 카페에 가면 디저트로 주문하는 빵 중에 커피빵이 있다. 조선시대 커피의 또 다른 이름인 ‘가배’를 응용해 '가배만주'라고도 불리기도, '커피콩빵'이라고도 부르는데 씁쓸하고 향긋한 커피와 퍽 잘 어울리는 달콤한 빵이다.

 

 

그렇다면 이 커피빵은 누가 처음 만들어 먹었을까? 안타깝게도 커피처럼 한국 최초의 커피빵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빵은 19세기 말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 전파되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당시 선교사들은 숯불에 빵을 구워 먹었는데 우랑(牛囊,쇠 불알)과 같다고 해서 '우랑떡'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것이 최초의 빵이다.

 

 

특히 고종의 총애를 받은 사람이자 고종에게 커피를 처음 소개해 준 인물로 거론되는 손탁에 의해 빵 역시 많은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손탁은 1902년 서울 정동에 ‘손탁호텔’을 세웠다. 고종은 덕수궁 건너편 정동 400여 평 대지에 회색 벽돌로 2층 양옥집을 지어 손탁에게 선물했는데, 손탁은 이 집을 1897년부터 호텔로 운영했다. 이 호텔 1층에는 레스토랑 겸 커피숍을 운영했으며 커피와 양과자, 빵 등을 판매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빵은 ‘면포(麵包)’ 즉 카스테라 눈처럼 희다 하여 ‘설고(雪羔)’라고 불렸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빵이 대중화된 것은 6.25 이후 미국이 원조 물자로 밀가루를 지원하면서부터라고 전해진다. 우리나라는 일제시대를 거쳐 광복 후 부족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혼식·분식장려정책을 실시하게 되었고, 이것이 빵의 대중화로 이어졌다. 당시에는 쌀밥 먹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주식인 쌀이 부족했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정부에서 본격적인 ‘혼식·분식 장려 운동’에 돌입했다. 말이 ‘장려’이지 실제론 ‘강제’였다고 한다. 주부궐기대회에선 “혼·분식을 하지 않는 요식업체에선 음식을 사 먹지 않겠다”는 결의를 했고, 학교에선 도시락 검사로 30% 이상 잡곡을 섞지 않은 학생을 적발해 성적을 깎고 벌 씌우고 학부모를 부르는 일도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어쨌든 혼식분식장려운동으로 빵이 대중화되기 이전에도 빵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바로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제빵 기술자들이 들어오면서 빵집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커피빵도 이쯤 생겨났거나 아니면 그 이전 19세기 말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 전파되었을 때 만들어 먹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한국 최초의 커피빵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카피사탕떣’이다. 실험정신이 투철한 민족성과 혼합해 먹는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식습관은 간혹 괴식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괴식은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 내기도 했을 것이다. 바로 향긋한 커피 내음이 깊게 베어 있는 커피빵이다.

 

 

사진 = 이화원

 

 

‘카피사탕떣(커피빵)’은 1930년 경성서양부인회가 출간한 ‘서양료리법’에 ‘카피사탕떣(커피빵)’ 만드는 법이 실려 있다. 해서 커피빵은 일제 강점기 시기이나 그 이전부터 만들어 먹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빵’이란 단어로 불린 것은 일제강점기 빵집이 생겨나면서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빵이란 말은 포르투칼어인 팡(Pao)이 일본에서 변형된 것이다. 포르투갈에서 일본에 빵이 들어오면서 이름도 함께 들어왔는데 일본어로는 팡(パン)으로 불린다. 카피팡이 아닌 카피사탕떣으로 쓰였다는 점에서 19세기 말 선교사들에 의해 빵이 전해지며 커피빵도 전해졌다고 추측해 볼 수도 있다.

 

 

이후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 모습의 커피콩빵이 탄생했다. 커피콩빵은 강릉 커피콩빵이 원조라고 할 수 있다. 한국 1세대 바리스타 박이추 선생의 카페가 있기도 한 강릉은 커피거리로도 유명한데 커피를 산업에 접목해 커피잼이나 커피빵 등 관련 제품을 생산 판매하면서 관광산업이 발전하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커피콩빵이다. 원두커피 모양을 한 재미난 빵으로 국내 최초로 특허, 디자인이 등록된 빵이기도 하다. 강릉시 우수관광상품으로 지정돼 출시와 동시에 많은 인기를 끌었으며 다양하게 응용되어 출시되고 있다.

 

 

현재 나오는 커피빵은 예전에 먹었던 커피빵과는 조금 다른데, 안에 팥이나 크림 등을 넣어 만든 일종의 앙금빵 형태로 보다 더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모양만 커피모양이 아니라 커피가 함유되어 있어 은은한 커피향과 달콤한 앙금의 조화가 좋아 커피와 먹으면 더욱 진한 커피 맛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커피의 향내는 과거에서부터 전해지며 우리의 삶 속 깊게 배어들어 지금의 커피공화국을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참고문헌]

부산일보,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19031318450199828

유길준, 『서유견문 2004』, 서해문집

조선일보, https://m.chosun.com/svc/article.html?sname=premium&contid=2013122703392

『푸른 눈에 비친 백의민족』, 2008, 한국기독교 박물관

H. N, Allen『Things Korean』,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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