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개발 속 버려지는 개·고양이들의 이야기
8월 27일에 개봉한 영화로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이란 반려동물 다큐멘터리입니다. 영화는 프랑스어 ‘heure entre chien et loup’ 즉 ‘개와 늑대의 시간’을 인용하여 만든 제목인 것 같습니다. 당초 지난 3월 개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미뤄졌습니다. 확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자 개봉을 미룰 수 없다는 판단하에 8월 말 개봉을 확정 지었습니다.
영화《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은 2019년 제7회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와 제2회 카라 동물영화제의 초청작으로 잔잔한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아울러 '시와 음악, 그리고 추억을 보듬는 다큐멘터리’로 평가받고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 | A Time for dogs and Cats
연출: 임진평
내레이션: 양영은
제작: 투아이드필름
개봉: 2020년 8월 27일 (한국)
영화는 서울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백사마을의 떠돌이 개와 고양이 이야기를 담은 감동 이야기로, 2017년 5월 진행된 백사마을 개·고양이 전수조사가 영화 제작의 발단이자 주요 소재입니다.
백사마을은 서울 강북 끝, 불암산 산자락 아래 위치한 재개발 지역입니다. 1960대 말 도시정비라는 명목으로 살던 곳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이곳 산자락에 8평씩 노끈으로 둘러쳐진 공간을 할애 받아 터를 잡고 살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 백사마을이 개발을 확정되자 사람들은 하나 둘 마을을 등진 채 떠나게 되었는데요. 2017~2018년 영화 촬영 당시에도 이미 많은 주민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도중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목줄이 풀린 개들, 주인이 떠난 집에 덩그러니 남아 집을 지키는 강아지들이 먹을 것을 구해, 혹은 떠돌아다니다 산으로 올라가 소위 말하는 ‘들개’가 되었습니다. 또 사람이 별로 살지 않다 보니 불암산 자락 달동네는 어느 순간 ‘들고양이’들로 급격히 늘어갔습니다. 그래서 개와 고양이의 시간이기도 하죠. 그 과정을 오롯이 담아낸 영화가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입니다.
들개는 사람에게 버림받고 인간의 터전에서 밀려난 떠돌이일 뿐, 결국 그들을 ‘들개’라는 이름으로 내 몬 것은 인간의 또 다른 이기심이라는 것을 영화를 통해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들개와 들고양이는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씁쓸한 산물이라는 것"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이기도 할 텐데요. 그래서 그런지 러닝타임 내내 등장하는 동물들은 사나운 들개나 골칫거리 들고양이가 아닌 버림받고 인간들의 터전에서 밀려난 떠돌이이자 외톨이로 묘사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동물과 공존하고 상생하는 데 있어 생각해 보아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 집사들을 위한 힐링 다큐
영화는 단순히 버려진 개와 고양이들의 이야기만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집사(반려동물 보호자)들을 위한 힐링 다큐’라는 헤드카피를 내걸 만큼 감동 스토리가 담겨 있는데요.
백사마을에 들개가 걷잡을 수없이 출몰하자, 지난 2017년 동물권행동 카라(대표 임순례)와 서울시가 백사마을에서 들개 예방을 위한 반려동물 전수조사를 벌였습니다. 그 과정부터 벌어진 감동 스토리도 전합
연탄광 옆 1m 쇠사슬에 묶여 4년을 살다가 새로운 삶을 찾는 대형 믹스견 '곰순이'의 파란만장 입양기를 그린다거나, 마을 주민들과 동물보호 활동가들이 만든 유기견 임시보호소 '동행 104'를 통해 펼쳐지는 견생역전 스토리가 담겨있습니다.
동행 104를 통해 한 가정으로 보내진 경일이와 프로젝트 종료 후 캐나다 토론토로 입양된 망치의 모습을 통해 ‘개도 행복하면 웃는다’는 사실을 그렸습니다. 더불어 행복한 반려견이나 반려묘 옆에 있는 사람들 역시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녹여냈습니다.
◐ 펫로스 증후군, 그리고 따뜻한 위로의 선율
영화는 또한 함께 살던 반려동물을 잃은 후 '펫로스 증후군'에 빠진 이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위로하는 모습들도 다루고 있습니다. 어느 한편에서는 버린진 동물들이 나오지만 어느 한편에서는 행복했고, 가족을 떠나보낸 슬픈 이들을 소개합니다.
배우 진완호 씨는 같은 해 태어난 반려견 춘식이와 19년간 함께 추억을 쌓아왔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레 이별하게 되었습니다. 진 씨의 아버지는 이사하는 날 춘식이를 홀로 남겨두고 떠나며 아들에게 “상황이 좋아지면 그깟 개 따위 얼마든지 더 키우게 해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별은 결국 아픔으로 남았는데요. 어린 시절 춘식이와 이별의 아픔을 한 평생 갖고 사는 진 배우의 이야기는 애니메이션과 어우러져 아름답게 표현되었지만 아름다운 만큼 또 처연하게 다가옵니다. 그 속에서 떠난 이들의 마음 한 켠에는 무엇이 남았을지 고찰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또 다큐멘터리 후반부의 하이라이트라 할 '개와 고양이를 위한 음악회'는 영화 관객들에게 의외의 힐링 선물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피아니스트 방기수, 첼리스트 구희령, 비올라 고형경으로 구성된 클래식 연주자들이 한데 모여 선율을 맞춥니다. 이와 함께 클래식 기타리스트 안형수가 길 위의 동물들을 위로하기 위해 직접 쓴 곡들을 연주합니다.
이 밖에 반려동물 집사들로 잘 알려진 문단의 젊은 시인들도 영화에 참여했습니다. 유형진, 유현아, 박시하, 신철규, 길상호 다섯 명의 시인이 쓴 다섯 편의 시가 다큐멘터리의 각 장을 열고 닫으며 기존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색다른 시적 감동을 선사합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이나 그렇지 않은 이들이라도 음악과 시로 힐링 되는 경험을 받을 수 있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재미있는 것은 바로 이점에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네에게 각성을 요구하진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저 잠깐 추억과 음악을 전하며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함께 산다는 것, 이보다 더 멋진 일이 있을까”라고 손 내밀며 넌지시 이야기를 전하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이 '시와 음악, 그리고 추억을 보듬는 다큐멘터리’로 평가받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 다시금, 공존·상생의 시간
안타까운 것은 백사마을의 개·고양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라는 데 있습니다. 현재 재개발이 확정된 백사마을은 한 집 걸러 한 집이 빈집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사람들은 하나둘 꾸준히 떠나갔고 버려진 집에는 개들만 덩그러니 방치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2018년 10월 9일 보호소 동행 104가 문을 닫아, 동물들은 다시 홀로 남겨졌습니다. 백사마을은 투자를 목적으로 한 외지인들 발길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개·고양이들의 미래는 그리 녹록지 못합니다. 들개나 들고양이는 한때 나의 가족이었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아 버려진 동물임이 자명함에도 말입니다.
하지만 더욱더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현상이 비단 백사마을 만의 일이 아니라는 데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전국의 수많은 재개발 지역에서, 휴게소에서, 공원에서, 혹은 지방 어느 한적한 곳에 반려동물을 버리고 떠나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인이 떠난 그 자리에는 비가 오고 눈이 와도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한때는 소중한 가족이었던 반려동물이 있습니다.
들개가 아닌 예쁜 이름으로, 도둑고양이가 아닌 ‘길냥이’로 불릴 수 있는 시간은 너무나 짧았습니다. 들개와 들고양이라는 이름으로 배척받는 동물들에게 따뜻한 시선과 예쁜 이름을 되돌려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현시대를 살아가는 상생의 의미가 아닐까요. 반려동물, 반려인, 비반려인들에게 공존·상생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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