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커피이야기

최초의 커피자판기와 강릉 커피 거리 자판기 커피

by 연쇄먹방범 2021. 1. 15.
728x90

 

 

강릉 하면 커피가 생각나는 것은 비단 저뿐만이 아닐 텐데요. 강릉은 현재 카페 거리(구 안목항)로 인기가 많은 곳입니다. 카페거리로 유명한 강릉에는 커피자판기도 유명합니다. 강릉에는 카페도 많지만 길 카페도 있습니다. 바로 고즈넉한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50여 개의 커피 자판기입니다.

 

 

강릉은 80년대 초부터 커피 명소로 손꼽히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커피 1세대라 불리는 커피 장인 박이추 선생의 보헤미안과 테라로사가 있는 곳이 강릉이기도 한데요. 당시 국민관광지였던 경포 인근에 커피숍들이 속속 생기면서 안목 해변에는 커피거리가 조성되었습니다.

 

 

탁 트인 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안목해변의 커피 자판기는 80~90년대 청춘들의 명소였다는 부모님들의 썰이 있는데요.

 

 

성수자판기, 국내 최초 커피 자판기

 

 

국내의 커피자판기는 1980~1990년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자동판매기는 기원전 215년 수학자 헤론이 만든 고대 이집트 신전에 있던 성수 자판기입니다. 동전을 넣으면 레버가 있는 접시에 떨어지고 밸브를 열면서 물이 흐르게 되는 구조입니다. 이것이 진화를 거듭해 현대의 자판기 시초는 1880년대 영국과 일본에서 등장한 엽서자판기와 담배자판기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커피자판기는 1977년 롯데산업에서 일본 샤프로부터 도입한 것이 최초입니다. 자동판매기 완제품을 400대 수입해 지하철 1호선 등에 설치하면서 국내에서의 자판기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도입된 커피 자판기는 10년 전만 해도 전국에 10만 개가 넘을 정도로 흔했습니다. 90년대만 해도 커피자판기는 우리의 일상 속에 자리하면서 지하철, 회사, 도서관, 길거리 등 곳곳에서 볼 수 있던 하나의 풍경이었습니다. 하지만 눈과 입이 높아진 소비자에게 자판기 커피는 품질 경쟁에서 뒤처지게 되었습니다. 예전의 명성은 편의점 커피나 카페의 커피로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한 보고에 따르면 한국인 2명 중 1명은 편의점 커피를 사 마신다고 하는 것처럼 편의점 커피, 그리고 커피 전문점의 커피가 커피 자판기의 찬란했던 과거를 대신하고 일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강릉의 커피 자판기는 여전히 건재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 이유는 안목해변이 카페 커피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커피 자판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언젠가 안목해변에 커피 자판기가 들어왔는데요, 경포 인근의 안목 해변은 강릉에서 처음 커피 거리가 생긴 곳입니다.

 

 

바닷가에 웬 자판기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1980~1990년대 안목 해변에는 유동인구가 많았습니다. 강릉항과 인접해 있어 수산물 판매장에서 식사하던 사람들이 이곳 바닷가를 거닐면서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먹기 시작한 것이죠.

 

 

강릉의 어느 시인이 ‘비 오는 날 분위기가 끝내준다’고 한 것처럼 끝내주는 분위기 때문인지 입소문이 나면서 이곳으로 데이트를 즐기려는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자판기 커피를 즐기려는 사람들도 북적대면서 ‘길다방’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는데요.

 

 

 

 

이후 자판기 수가 급격히 늘어 지금의 길 카페가 조성되었습니다.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카페가 생겨나면서 지금의 커피 거리가 조성되었습니다.

 

 

요즘에는 카페에서 마시는 아메리카노나 라테에 밀려 자판기 커피보다는 추억의 명소로 기억되는 곳이 많지만, 강릉의 자판기 커피는 바닷가에서 마시는 커피라서 인지 이상하게 더욱 맛이 좋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이곳에는 별다방의 커피가 아니라 단돈 400원의 커피가 4000원의 커피가 되는 커피 한 잔의 여유, 낭만이 묻어나는 이유는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짙은 커피 향 때문이 아닐까요.

 

 

카페를 이용해도 좋지만 추억이 묻어나는 자판기 커피는 시원한 바람과 쓸쓸한 듯 고즈넉한 바다 풍경, 그리고 커피향을 더욱 짙게 만들어주는 매개체이자 안목 커피 거리의 매력을 보여주는 하나의 역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728x90

댓글